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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의례

효(孝) 예(禮) 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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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허공 작성일21-12-15 19:07 조회69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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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孝) 예(禮) 란 무엇일까?

예부터 우리 선조들은 충(忠)효(孝)예(禮)지(知)인(仁)의(義)신(信)을 생활의 중요한 덕목(德目)으 삼았다. 이는 법률과 같이 강제성을 띠지 않지만 사회 규범으로서 국민 정서에 자리매김하여 반만년 역사를 이끌었다. 또한 윤리 도덕의 바탕으로서 우수한 민족을 만드는 원동력이 되었다.

이제는 이러한 민족성이 흔들리고 있다. 아니 무너지고 있다는 표현이 맞을 것 같다. 위의 일곱 덕목 중에서 어느 하나 제대로 계승되는 것은 없다. 다른 것은 제처 놓고 효도 와 예절 두 가지만 가지고 논해 보고자 한다.

효도(孝道)는 모든 행동 중에 으뜸이라고 했다. 이 시대에 효도를 제대로 하고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글을 쓰는 나부터 대부분의 사람들이 효도를 다하지 않고 살아간다. 못하는 것이 아니라 하지 않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사람들은 그 원인을 세상의 변화로 여기며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결코 그건 아니다. 가정과 학교 그리고 모든 기성세대의 교육부재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한다.

물질 만능 시대에 사는 현대인들은 당장 편리함만 추구한다. 먼 훗날은 염두에 두지 않는다. 따라서 거추장스럽고 귀찮은 덕목이나 규범 따위를 벗어던지려고 한다. 아이들에게 눈에 보이는 주입식 교육에만 전력을 투구한다. 윤리 도덕은 뒷전에 밀리다 못해 구석에 처박아 버린다. 이러니 훌륭한 전통을 이어가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다.

효도가 부모님이 살아 계실 때 해야 할 덕목이라면 예절(禮節)은 생사에 관계없이 모두를 아울러 해야 할 자식의 도리(道理)다. 생전에 효도를 다하지 못했다면 별세 후에는 더욱 예(禮)를 갖추어 추모하는 것이 옳다. 중국 송나라 때의 학자 주자(朱子)의 열 가지 가르침 중에는불효부모사후회(不孝父母事後悔)라는 항목이 있다. 풀어서 말하면 부모님께 불효한 사람은 돌아가신 후에 뉘우친다. 는 말이다. 그래서 뒤늦게 깨닫고 그리워하며 추모하는 것이다,

부모는 생을 마감하는 순간까지도 자식을 걱정한다. 죽은 후에도 당신들로 인해 자식들이 불편하고 부담을 줄까 봐 염려스럽다. 그래서 시신을 화장해서 물에 띄워 보내라고 하거나 나무 밑에 묻으라고 한다. 자식은 이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인다. 마치 유언 인양 합리화 시켜 본인들 편리한 대로 해석한다. 부모 생전에 효도한 사람이나 불효한 사람이나 세월이 지날수록 부모님에 대한 그리움은 커져 간다. 어쩌면 불효를 많이 한 사람일수록 더욱 회한이 클지도 모른다. 내일 모래면 나이 칠순인 내 경험에 비추어 보아 그렇다.

살다 보면 부모님이 그립고 뵙고 싶을 때가 있다. 삶이 힘들 때도 기쁠 때도 있다. 그 때 찾아 가는 곳이 산소나 영전이다. 그곳에서 엎드려 눈물을 떨구며 불효의 용서를 빈다. 때론 하소연하고 응석도 부린다. 부모님의 은혜를 한 번 더 되새기며 그리움도 달랜다. 그럼으로써 조금이나마 위안이 된다.

그래서 대다수의 자식들은 산소나 추모 공원에 모신다. 한편으로는 자식들이 건재함에도 불구하고 시신을 화장해서 강이나 바다에 흘려보낸다. 또 수목장이라는 이름으로 타인의 산에 몰래 묻는 사례를 가끔 본다. 이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수목장을 하려면 내 땅의 수목에 제대로 해야 한다. 남의 토지에 몰래 묻는 것은 시신 또는 유골의 투기다.

최근 인척 두 분이 고인이 되셨다. 두 장례식에 참석하면서 참으로 많은 것을 느꼈다. 한 분은 선산의 부모님 산소 앞에, 또 한 한 분은 화장장 안에 1㎡가 채 못 되는 땅에 한 줌의 재가 되어 묻히셨다. 어떤 사례가 상대적으로 더 나은지는 각자의 생각에 따라 다를 것이다. 참견할만한 입장이 아니라서 말은 하지 못했지만 많이 아쉬웠다. 선산에 모시지 못할 사정이라면 한 번이라도 더 찾아뵙기 용이한 추모공원을 권하고 싶었다. 영전을 모시는데 금전적인 문제는 따지지 말았으면 한다.

부모님은 나에게 어떤 존재인지 나는 부모님으로부터 어떤 존재인지를 다시 한 번 새겨보게 된다.

조상의 기일이나 차례도 생략하는 사례가 하다. 명절의 미풍양속은 사라져 간다. 가족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라고 제도화 된 3~5일간의 효도 휴가는 여행 가기가 바쁘다. 명절 차례를 여행 중의 숙박 업소나 노상에서 형식적으로 지내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세상사 늙고 병들어 죽는 것을 너무나 당 연시 여긴다. 낳고 키워주신 은혜가 얼마나 큰 지를 모른다. 나를 위해서 젊음을 불사르며 쏟아 부은 정성을 모른다.

삐뚤어진 가치관으로 세상은 점점 피폐화 되어간다. 지나친 사교육 전쟁으로 인성 교육은 실종되었다. 젊은이들의 정서가 메말라 간다. 친인척 간의 정이 사라져간다. 팔촌도 육촌도 사촌 없다. 친형제간의 정도만 그저 명맥만 이어간다. 형제 간에도 죽어서 묻힐 땅 한 평을 나누어 주지 않는 각박한 세상이 되고 말았다. 나만 편하게 살면 된다는 사고방식이 팽배 하다. 그래서 홀로 살거나 아이를 낳지 않으려고 한다.

이런 추세라면 머지않아 명절 기제사 장례식은 사라진다. 나아가 인구 학자들이 주장하는 지구 상에서 한국인이 소멸할 시기가 훨씬 앞당겨 질 것으로 예상한다. 끔찍한 일이다.

이처럼 세상사의 기본 덕목인 효(孝)와 예(禮)는 현대화와 간소화에 포장되고 편한 세상에 밀려 점차 사라져가고 있다. 우리 사회의 윤리 도덕을 지탱하는 두 축이 무너지고 있다. 우리 미래가 어둡고 심히 걱정된다.

되돌리기에는 너무 늦은 감이 있다. 그렇다고 전혀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무너지는 세상을 보고만 있을 수는 없다. 국민들의 의식 개혁이 필요하다. 기성세대의 사고의 전환이 선행되어야 한다. 가정과 학교에서 효도와 예절을 비롯한 인성 교육 강화가 절실하다. 늦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르다는 말처럼 지금부터 다시 시작해야 해야 한다. 그래야만 밝고 건강한 우리나라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


     -글 유병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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